인간에게 고귀한 액체가 있다면, 그것은 땀과 눈물과 피입니다. 모든 인간의 위대한 실현은 거의 이 고귀한 액체가 뿌려진 결실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결코 값진 성공을 이룰 수가 없으며, 눈물 없이는 숭고한 정신이나 진리가 실현된 일이 없으며, 피를 흘리지 않고서 새 역사가 창조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회고해 볼 때,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이 우리의 심령을 뒤흔들리게 만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감동적인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셨다'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우셨다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인간애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3-35). 이때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다크루오)’은 소리 없이 흘리는 눈물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죽음의 권세 아래서 죽어가는 모든 인간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눅 19:41-44). 이때 울음은 소리가 들리게 우신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흐느껴 우신 눈물은 주후 70년경에 멸망할 예루살렘의 참상을 생각하며 흘리신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은 없으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조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자기 민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즉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 나라 이 민족을 향한 뜨거운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전 세계 인류구원을 위하여 우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인류의 대속적인 구원의 역사 앞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애절하게 고함치며 우셨던 것입니다(히 5:7).
우리는 지금 울며 씨를 뿌릴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눈물이 고인 곳에 우리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하는 강퍅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울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인간애, 사랑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 민족과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구국 기도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 땅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