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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는소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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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 가운데 얻은 깨달음

  • 김진문
  • 조회 : 49
  • 2024.03.07 오전 09:46

 연약함은 불청객과 같습니다. 연약할 때 몸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마저도 위축되고 힘이 빠집니다. 그리고 건강했을 때를 기억하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으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약함은 죄가 아닙니다. 연약함은 단지 연약함일 뿐입니다. 연약함으로 가슴 아파하고, 연약함을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생은 정직하나 공평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강하게 태어나 부유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랍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약하게 태어나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자랍니다. 이런 불공평은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선한 목적을 두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연약함도, 강함도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연약함의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해석의 문제요,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연약함은 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연한 순”(이사야 53:2)으로 오셨습니다. 연한 순은 비록 여리지만, 약동(躍動)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연한 순에는 엄청난 잠재적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연한 순으로 오신 예수님은 부드럽고 나약하지만, 생명을 소유한 예수님을 그 누구도 쓰러뜨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사흘 후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죽음도 파괴하지 못하는 생명력이 연한 순 속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는 많이 약했습니다.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기도에 거절하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혹독한 은혜이긴 하지만 거절하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는 그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서 온전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히려 약한 것을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연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은총의 수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연약함으로 연약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연약함이 있는 지체들이여! 우리 연약함 때문에 마음 아파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한 연약함은 오히려 우리를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연약함을 겸손과 행복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 삼읍시다. 오히려 연약함 때문에 누리게 된 행복을 생각하며, 일상에서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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