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8) 이 말씀은 십자가의 처형 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걸어가시면서 침묵하셨던 예수님께서 슬피 울며 따르는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나라를 잃게 되었을 때, 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비극적인 아픔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는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귀담아들어야 할 말씀으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속에서 왜 부모는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까? ① 부모는 허물이 크고, 실수가 잦고,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인격의 소유자 있기에 때문입니다. ② 어떤 부모나 성인 아이 특성으로 자녀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어 왔기에 애통(哀痛)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왜 자녀들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곤고한 영혼을 바라보며 울어야 합니다. 신자인 부모의 가장 큰 의무는 자녀들을 진실한 회심에 이르게 하고, 회심에 이르는 자녀들이 그 은혜를 간직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영적 상태를 보면서도 부모가 울지 않는 것은 ① 자녀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의 육체는 사랑할는지 모르나 그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기에 자녀를 위해 흘릴 눈물이 없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눈물이 많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눈물이 없고,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울지 않는 것입니다. ③ 자신을 위해 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만이 자녀의 영혼을 위해 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식의 무사안일한 신앙을 위해 기도하겠으며,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녀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부모는 자식을 위해 두 번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한번은 육신의 출생을 위한 해산의 고통이고, 또 한 번은 영혼의 출산을 위한 해산의 고통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두 번 해산의 고통을 겪고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참된 부모는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듯이 자녀를 위해 목숨을 주기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목숨을 주기까지 사랑할 수 있는 부모는 자식의 영혼을 위해 눈물을 기꺼이 쏟는 부모입니다. 지금은 장차 임할 그 날을 생각하며 울어야 할 때입니다. 부모와 자녀를 위해서!